어릴 적 만든 건프라들 My Work

며칠 전 아우 녀석이 찾아낸 사진들.
기억도 날까 말까 하던 것인데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워낙 세월의 흔적이 묻은 사진이라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는 한 이게 내 한계지만 디지털의 힘으로 묵은 때를 벗겨내 그럭저럭 볼만하게 해놓으니 감회가 새롭다.
사진 뒷면의 날짜로 보아하니 89년 3월 현상한 것. 만든 건 그 한 두달 전 겨울방학 때.
자쿠는 아이잭 개조품으로 풀가동 스커트(기대만큼 움직이진 않았다)에 LED로 눈에 불 들어오게 한 것이고 프로토타입 돔은 몇 군데 손만 본 것으로 촬영 훨씬 전에 만든 것들이다. 아마도 87~88년 사이.
하여간 이거 찍어 보자고 2박3일인가 걸려 하드보드지로 바닥 만들고 마분지 빌딩에 셀룰로이드로 유리창을 만듦. 빌딩의 돌출부는 나무젓가락. 게다가 나름대로 원근 계산하여 만든 건물들이라 원근감이 살아난 건 지금 봐도 대견스럽다.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하리라...:-)
폭발용 프롭으로 짧은 삶을 마감한 지오닉 사의 트럭은 알루미늄 호일로 만든 필생의 역작이었다! 주제에 백미러까지 달렸으니...
폭발효과는 폭음탄(방에서 터뜨렸다!), 무기 섬광은 꼬마 전구에 벌브셔터 이용.
하여간 이거 찍어 보자고 벌브셔터 타이밍 알아내려 필름 한 통 다 날렸고, 기억에 f16에 약 8초간 노출이었을 것이다.
위 배열 순서가 당시 촬영 컨셉이 맞을 것이다.
때는 008X년이던가...다카르 공략 지온 잔당에 보급 중 연방군에 저격당한 지오닉 트럭-> 놀라서 응사하는 자쿠와 돔. 이런 컨셉.

85년경 만든 자쿠탱크(물론 카피판).
눈이 쌓인 걸 보고 냅다 로봇 찍어 보자고 설쳐댄 결과물 중 하나로 기억한다.
아쉽게도 중딩 시절 처음 만져본 SLR카메라인데다 추운 겨울인지라 결국 엄청 흔들렸고, 그나마 편리한 툴 덕분에 이 정도나마 복원할 수 있다는 것에 고마울 뿐이다.
현상은 86년 2월.

그 이후 카메라 좀 공부해보자고 찍어본 것이지만 단렌즈로는 30cm가 접사한계였다.
이거 찍어보자고 찰흙으로 뚝딱뚝딱 베이스 만들고 흙뿌려서 땅처럼 만들었건만...
아마도 거실 창문에서 석양 빛을 조명으로 찍어본 것으로 기억. 노출 언더에 엄청나게 누렇게 나온 걸 이 정도나마 복구.
킷은 1/144 06R2 조니라이덴 자쿠로 에이스과학 것이던가...하여간 R1형으로 바꾸고 지상전에 투입된 녀석이라는 설정 하에 제작 중이던 것이다. 때문에 기본도색만 완료된 상태. 잘 보니 스커트도 넓혔다. 그래봐야 다리가 더 움직이지도 않건만...아마 플라판이 없어서 4호전차 쉬르첸 뜯어서 스커트를 넓혔던가 했을 것이다.
엑스트라 군인은 1/35과 1/72 독일군 개조 지온군으로 역시 원근감을 노린 것.
어린 주제에 들은 건 있어서 죽어라 원근감 따졌던 듯 하다 :-)

같은 날 찍은 것으로 이건 성공이었다. 잠깐 다듬어주니 꽤 볼 만해졌다.
킷은 1/100 걍과 역시나 1/144 06R2자쿠로 이건 아우 녀석의 작품들.
갓 중딩 된 주제에 열심히도 웨더링에 마킹까지 한건 좋은데...영문모를 M-47은 무엇이뇨(마 쿠베는 47세?)
아우 녀석이 회색 좋아하는 건 이 때부터였나 보다. 분명 회색 에나멜이 붓자국 안 남고 밑색 잘 드러나지 않으니 서피서건 밑도색이건 모르던 그 시절엔 그보다 더 좋은 색은 없었을 터.
이 무렵이면 현용 전투기도 저시인성 도장 투성이니 로봇도 그에 잘 들어맞고.
하여간 이 때가 가장 재밌게 모형 만들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
두 사진 모두 87년 3월 현상.

위에 등장했던 녀석들 집합.
지상전용 고기동 자쿠가 완성된 것으로 보아 87년~88년 사이일 것이다. 저 녀석 만들어보자고 전투기 데칼 꽤 잡아먹었던 것으로 기억. 하여간 완성하고 너무나 감격해서 찍은 사진일 것이다.
이 와중에 자쿠탱크 한대가 더 늘었는데...이건 아마도 아우 녀석이 만든 것으로 기억한다.
미채도장인 걸 보니 보나마나 내 자쿠보고 샘나서 따라 칠한 것이 분명. 지기 싫었던지 무려 3색 미채다...어이구야 :-)
하여간 만든 거 모아놓고 보니 꽤나 MSV 정신에 꽤나 충실히 몰두했던 듯 하다.
데이터마킹도 잔뜩, 패널라인 교체흔적도 넣었고, 스커트는 죽어라 개조했으며, 돔 바주카의 방열재킷도 손수 디테일업까지 했으니...게다가 몽땅 지온......OTL
저 때면 '아카데미 칸담 시리즈'가 광풍이던 때인데도 죽어라 지온 만세다. 이 천성은 죽어도 못버릴 듯. :-)
저 사진 찍자고 베이스까지 만든 걸 보면 당시의 나는 나름대로 무슨 종군기록사진 같은 컨셉을 줄곧 노렸던 듯 하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보나마나 캘리포니아 베이스일 듯.

이건 89년도 경 사진.
ZZ는 아우만 좋아했으니 당연히 아우 것(역시나 회색에 죽고사는 녀석이로다).
분명 사진 못찍어 나보고 찍어달라던 거 아니면 내가 꼬셔서 세트 만들어 찍은 것일 듯 하다.
잡지에서 달 사진 오려 검은색 켄트지에 붙여놓고 우주공간이라 우긴 것인데 노출이 오버니 배경 다 드러나버렸다. 매달은 줄 보이는 것도 억울한데 손까지 찍혔다!!!
아마 벌브셔터에 F16으로 17초던가 노출주고 찍은 것으로 기억. 분명 꼬마전구를 이용해 메가런처 발사하는 순간 찍는다고 설치던 중일테고 이 사진은 그 테스트 사진 중 하나일 것이다.


이젠 저 시절만큼 플라모델에 대한 열정은 없는 듯 하다.
워낙 좋은 품질로 나와 가조립만 해도 그럴 듯 한데다 귀차니즘의 마력은 '색칠하느니 죽지'하며 붓을 잡지 못하도록 막고 있으니.
저 조악한 품질의 제품을 완성시켜보자고 낑낑거렸을 당시의 나나 아우를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
그리워라.
결국 10대 때 저 짓거리 한 덕분에 아직도 건담을 못잊는 건 후회막급이지만...:-)

몇 장의 사진 때문에 밤늦게 설쳤지만 감회깊은 시간여행을 즐겼다.
바로 이런 맛 때문에 디카가 판치는 요즘도 사진을 현상하는 것이겠지.

덧글

  • 잠본이 2005/02/23 07:58 #

    정말로 좋은 시절을 보내셨군요. ;>
  • 미성년자 2005/02/23 08:03 # 삭제

    이야 이게 자쿠러님의..!
    루x웹에서 흘깃 보고 참 재밌는 분이 있었네.. 하고 지나쳤는데 말이죠.
    저는 실시간 msv 모델링까지 하기엔 2~3년 쯤 어렸지만..

    모델링의 낭만이란 것도, 80년대가 정말 정점이긴 했죠.:D
  • 功名誰復論 2005/02/23 09:09 #

    저거 어린 시절 운운 수준이 아닌뎁쇼... (접착제로 가리안 완성한 거 정도로 환호하던 사람)
  • 김정훈 2005/02/23 09:26 # 삭제

    역시 추억이란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
  • 함장 2005/02/23 09:29 # 삭제

    열정이 보이네요.
  • 대치동건담 2005/02/23 09:36 #

    역시, 자쿠러님의 깊은 내공이 쌓이게된 역사를 들여다보는것 같네요.
    세상엔 거저 얻어지는건 없고, 뭔가 가진 분들은 그만큼의 역사가 있는거군요.
    사진 잘봤습니다.
  • FAZZ 2005/02/23 10:03 #

    저거 루리웹에서 보고 이야 그 당시에 저런 수준을 만든 사람이 있었군 했었는데 그것이 zakurer님일줄이야...... 세상이 좁다는것을 세삼 실감하게 하는군요 ^-^
  • 시대유감 2005/02/23 10:12 #

    FAZZ 정말 멋지군요. 다른 디오라마들도 밀리터리 냄새가 물씬 풍기고..
    과연 대단한 실력이십니다.
  • Juperion 2005/02/23 10:45 #

    저도 예전에 아카데미에 출품을 위해 가리안 시리즈로 디오라마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만...
    동네 꼬마들의 횡포로 무참히 바스러져버린 후로는 그만두었지요.
  • skan 2005/02/23 10:47 #

    저시대의 키트의 품질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시네요.
  • 황소자리™ 2005/02/23 12:16 # 삭제

    황소자리™는 동상.... 자쿠러는 형! 들켰당~~
  • ZAKURER™ 2005/02/23 13:17 #

    >잠보니: 재밌던 80년대 어린 시절이죠 :-)

    >미성년자 : 저도 나중에야 보고 화들짝했습니다 :-)
    저도 실시간 MSV 모델링은 아니죠. MSV가 83~84였고 저는 한 두해 늦게 MSV에 관심을 가졌으니...그래도 다른 사람보단 한 두해 빨랐다고는 생각합니다. 당시 로봇백과 이외 유일한 건담월드 접근수단은 바로 저 카피판 건프라들이었죠.

    >功名誰復論 : 가리안은 저도 본드로 만들기만 하고 환호했습니다. 전 윙갈만 죽어라 사모았었지요.

    >김정훈 : 좋은 것만 기억나서 그런 지도 모르겠습니다.

    >함장 : 애들 때니 가능했던 열정이 아닐까 합니다(폭소)

    >대치동 건담 :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FAZZ : 워낙 좁은 바닥이라니깐요. 한 바퀴 돌면 다 드러납니다^^;

    >시대유감 / 스칸 : 모형지를 조금 빨리 보고 따라해본 것 뿐인 걸요.

    >Juperion : 저도 2회던가 아카데미 컨테스트에 1/100 드라고너 커스텀 출품했었죠. 다행히 M1전차를 상품으로 타오긴 했는데 나중에 작품 회수를 못했습니다. 정말 정성들여 만든 녀석이었는데...

    >황소자리™ : 네 덕분이다.......
  • 태두 2005/02/23 14:29 # 삭제

    전 비록 실시간으로 msv모델링을 즐기지는 못했습니다만[90년대 들어서야 시작했으니 뒷북도 한참 뒷북이지요]공감이 가는 추억담입니다. 화보집에 실린 작례처럼 만들어보려고 어찌나 낑낑댔는지... :)
  • 天照帝 2005/02/23 16:13 #

    아이구~ 간지가 좔좔 흐릅니다요;
    (암만 MG가 좋아도 저때만한 깊은 맛이 안 난다니까요;)
  • slipwalker 2005/02/23 17:47 #

    저도 루리웹에서 보고 감탄했었는데 자쿠러님 작품이었군요 ㅎㅎ.
    콤파스 불에 달궈서 방패에 총알구멍 내주고, 파손된 부분의 내부기관 재현한답시고 전선 꼬아서 집어넣고 했던시절이 있었는데.. 확실히 요즘은 그런 재미는 없어요.
  • 니미쉘 2005/02/23 18:06 # 삭제

    정말 멋집니다. 저런게 진짜 프라모델의 재미죠.
  • ZAKURER™ 2005/02/23 18:52 #

    >태두 : 그러면서 드라이 브러쉬가 뭔지, 웨더링이 뭔지 배워나갔죠. 결국 알기만 하고 실천은 안해서 탈입니다만...:-)

    >天照帝 : 아무래도 금방 만들어지는 것보다 어설퍼도 땀과 피(!)가 섞인 완성품에 더 애착이 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품질이나 완성도야 MG가 훨 좋긴 하죠.

    >slipwalker : 그것 뿐입니까. 놀다 질리거나 만들다 망치면 몸 안에 화약넣고 터뜨리기 장난으로 한많은 생을 끊어주었죠(어이!)

    >니미쉘 : 정말 오랜만이십니다. 아무래도 저 때가 즐거웠죠 :-)
  • 계란소년 2005/02/23 18:52 #

    크헉 디오라마...ㅜ.ㅜ
  • Utopia의꿈 2005/02/23 19:14 #

    엇 어릴때 실력이 이 정도셨다는 겁니까? T.T저는 다시 좌절모드로 들어갑니다. ^^:::
  • glasmoon 2005/02/23 20:07 # 삭제

    루프동에서 황소자리님의 게시물을 보고
    아니 저시절에 저런 내공의 분이 계셨단 말인가 싶었는데
    그게 자쿠러님이셨을 줄이야..;; (게다가 형제지간!?)
    저도 카피 자쿠 몇대를 아카데미 에나멜로 떡칠해서
    디오라마 만들어보겠다고 설친적이 있었지만 그야말로 애들 장난이었죠.
    이런걸 또 사진까지 촬영해서 남기시다니..TT
  • 영원제타 2005/02/23 22:11 #

    80년대라면, 좋았던 시절이군요. ^^
  • NOT_DiGITAL 2005/02/24 00:25 #

    확실히 저도 예전에 비하면 프라모델에 대한 열정이 못한 듯 합니다. 아무튼 좋은 작품들 잘 봤습니다. :-)

    NOT DiGITAL
  • 죄다 2005/02/24 22:23 #

    저게 다 님께서 만드신건가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도 저렇게 해보고 싶은데...^^;
  • reimoon 2005/02/25 05:13 # 삭제

    건프라들이 다 낮이 익은 프로포션이네요 :)
    그 시절 저정도의 디오라마를 완성하셨다니 놀랍습니다. ^_^

    제타만들면서 꼭 하던짓 다리 포리캡 빼먹고 조립하던 시절이군요.
  • EST_ 2005/03/01 10:40 #

    사진까지 남기셨다니 진정 대단하십니다.
  • ひかげ 2005/03/01 11:29 #

    디오라마... 너무 멋집니다! 저 같이 2000년대에 와서 건프라에 입문한 사람은 꿈도 못꿀 수준이군요;
  • galant 2005/03/03 00:02 #

    끝내주는군요...
    포토샵이 판치는 요즘에 실제 물리적인 도구들을 이용해
    재현한 효과는 정말 말이 안나옵니다.
    당시엔 국내에 변변한 프라서적이 없을때인데 시대를 앞서 가셨군요.
    계속 하셨다면 지금쯤 프로모델러가 되셨을듯...
    야심한 시각에 감동먹고 갑니다.^^
  • 데빌냐옹이 2005/03/04 16:13 #

    정감 넘치는 사진입니다. '진짜 손맛'이 느껴지는 작품은 이제 보기 힘드니까요. 허름한 키트라도 불타는 열정이 닿으면 이렇게 멋지게 변한다는 걸 다시 새삼 깨닫습니다. 말라비틀어진 허무로 점철된 디지털보다는 좀 허름하긴 해도 열정으로 불타는 아날로그쪽이 역시 더 좋습니다.
  • MontoLion 2008/11/01 23:47 #

    89년이면 제가 태어났을때인데... 오랫동안 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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