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번역을 맡았었습니다.
책 소개는 ☞여기를 보시면 되겠고...
실은 늦어도 2월에 나왔어야 하는데 저 때문에 늦어졌고, 때문에 속앓이 했을 출판사 여러분께 머리 깊이 숙여 사과 인사부터 드립니다.
책 이야기로 넘어가면, 이런 종류의 서적은 아무래도 내용이나 수준, 그리고 번역서이므로 번역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우선, 디자인이나 편집은 원서를 아주 충실히 따르며(띠지마저도) 한국어 판본으로 나왔으니 이런 점에선 문제 없다고 봐야 할 것이고...
사진도 큼직큼직하니 눈에 편하고, 인쇄 상태도 원서와 동일(디지털 체제라 당연하지만)하니 보기엔 불편함이 없으리라 여깁니다.
저자는 일본의 저명 모델러이자 모형점 오리온 모델즈의 주인장, 그리고 모형 메이커 트라이스타 설립에도 참여한 나카다 히로유키(仲田裕之) 씨. 국내 모형계에선 「플라모델 만들자(プラモつくろう)」 방송(동영상)으로 접해본 분들도 좀 있을 겁니다.
※仲田는 나카다(Nakada)/나카타(Nakata)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는데, 이 仲田 씨는 일관되게 Nakada로 알파벳 표기를 하더군요. 해서 이에 맞췄습니다. 「플라모델 만들자」에선 나레이터가 나카타라고 했지만요. :-)
나카다 씨는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고 쉽고 즐겁게 플라모델을 만들자는 모토를 유지하며, 그의 스타일이 일본 AFV 모형계에 유행하기도 하고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죠. 이번 서적은 그러한 나카다식 모델링의 핵심을 모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원서의 부제가 ものぐさ, 요컨대 귀차니스트란 말이죠.
귀차니스트란 말이 상징하듯, 생초보는 물론이고 어른이 되서 다시 손대보거나 시간은 없어도 속성으로 그럴듯한 모형 완성품을 만들어 보고 싶은 이들이 메인 타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건플라처럼 부분 도색이나 간단 피니시로 끝낸다는 식은 아니고(밀리터리 모형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도 하고)... 책 내용을 보면 사실상 AFV 모형 만들기의 기본 정석 그대로입니다. 특히 첫장인 티거 I 작례에선 지겨울 정도로 기본 지키기를 거듭 되풀이하며 독자를 귀찮게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귀차니스트를 위한 책이 되는가 하면, '귀찮더라도 기본은 철저히 지켜야 나중에 더 귀찮은 삽질을 피할 수 있다'가 이 책의 일관된 주장이랄까요. 때문에 책 전체에 걸쳐 철저한 기본을 강조하며 이런 것 쯤이야 하던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하지요. 나카다식 꼼수는 색칠과 각종 효과에서 나오고 나카다 씨는 이렇게 외칩니다.
"안 보이는 데는 하지 마! 귀찮잖아!!!"
다만, 번역을 맡고 책을 여러 달 보면서 한 가지 불만이 내심 있긴 한데, 바로 지나친 2차 대전 편향성.
전세계 AFV 모형계가 2차 대전, 특히 나치 독일군 편향인 거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한 작례 정도는 현용물을 다뤄 균형을 고려했으면 어땠을까 싶지요. 뭐, 대전물이건 현용물이건 이 나카다식 땅끄 만들기를 충실히 따르면 전혀 문제될 것은 없다지만 말이죠.
그리고 독자 쪽에서 본다면, 중급~상급자에겐 별 효과가 없는 책일 수도 있겠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각종 고급 디테일업이나 색칠/효과 기법은 거의 쓰이지 않고(귀찮잖아요) 철저히 기본기만 다루고 있으니깐요. 그래도 가장 기본이 되는 제작법과 기법을 제대로 몸에 익히고 기본 기법만으로도 볼만한 완성품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 단계 위를 노려볼 수 있다는 점에서 땅끄 모형 초~중급자나 다른 모형 장르 유저에겐 상당히 도움과 참고가 되리라 봅니다.
그리고 번역하면서 느낀 점을 잠깐.
건담 웨폰즈 이후 처음 맡아 본 스케일 모형 서적인데, 건플라 때도 그렇지만 이런 모형 관련 서적이란 것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내용 자체가 까다로운 게 아니라, 한국 모형계의 용어가 매우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랄까요. 현재 모형계에서 널리 쓰이는 용어나 표현 중 표준 맞춤법이나 표기법을 지킨 것은 거의 없다시피 한데다, 다른 전문 장르도 그렇지만 한국의 플라모델 장르 자체가 일본 영향을 짙게 받아 용어나 어법 자체가 사실상 일어 그대로이니, 번역할 때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가 하면서 정말 고심했습니다. 결국은 보수 성향이 짙은 AFV 모형계를 고려해서 적당히 타협했지만요.
반면에 Zimmerit 같은 건 독어 표기법을 관철해서 '침머리트'로 적는 데 '성공'. 작은 승리입니다 :-)
해서, 톡 까놓고 말하자면, 번역하는 내내 키보드 두드릴 때마다 한국의 대표적인 모형지였던 취미가/NEO를 비롯한 한국 모형계 고참 분들에 대한 불만을 마음껏 뇌까렸습니다. "처음에 용어 정하고 퍼뜨릴 때 좀 신경 썼으면 후대가 편하잖아." 이러면서 말이죠. 아.하.하.
뭐, 국내 대표적인 모 모형 커뮤니티급 개인 사이트와 척을 지기도 해서 번역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기도 했고, 덕분에 흰머리가 두배로 늘었더군요.
하여간 이렇게 번역이 끝나고 책으로 나오니 시원섭섭하면서도 후련합니다.
덧.
뒤늦게 알아차린 작은 실수 하나.
drybrush/dry-brush를 '드라이 브러시'라고 띄어 썼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드라이브러시'라고 붙여 써야 띄어쓰기에 맞죠. 개인 용어 사전에 저장해놨어야 이런 실수가 없을 텐데... 너그러이 여겨주십사 바랄 뿐입니다.
'띄어쓰기'란 용어를 왜 붙여서 적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만. :-)
덧글
이 기회에 자쿠러님께서 한번 용어 사전을 하나 만드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 교정 팀이 이런 거에 충실하겠죠.
2. 트라이스터가 아니라 트라이스타지 말입니다.
2. 고쳤습니다. 흑.
지나가던 흐음님이 말씀하신대로 타미야 키트에는 타이가(타이거), 판싸(팬써) 즉 영어발음으로 쓰여있습니다. 하지만 티거와 판터는 해당 회사나 미국발 캐릭터 상품이 아니라 독일제 전차, 즉 역사를 가진 실물이지요. 그래서 물어본 것입니다.
참고로, 원서/번역서에선
"독일군을 대표하는 전차 하면 ‘타이거(이젠 티거라고 부를 때가 더 많으려나)’라 할 만큼 유명한 중전차"
라고 이 티거/타이거 관련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원고 내에서는 웬만큼 표준안을 따라가도록 교정을 봤긴 하지만 그걸 일반화시키거나 공론화해서 의견을 모을만한 역량에는 닿지 못했죠. 읽는 사람도 신경 안쓰고 임의로 뇌내변환하는 분위기였고.
일례로 취미가/네오는 줄창 '피겨'라고 적었지만 결국 정착된 단어는 '피규어'라는 정체불명성 단어가..
제 경우엔 외래어 표기가 원어에 가깝다면 좋겠지만(최근 영어 표기는 이런 방향으로 바뀌고 있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어느 학자 분의 의견처럼 '외래어 표기는 한국어 사용자 사이에서 혼란없이 잘 통용되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다만 어쨌거나 표준이고, 모형계보다는 더 광범위한 일반 서적의 표기까지 고려한다면 독어 표기법 쪽이 더 우월하고 대중적이니 가급적이면 표기법을 지켜주자는 정도죠 :-)
아...지갑에 천원짜리 몇장 밖에 없는데...우왕~~
대형 서점 등에서 샘플을보고 결정하셔도 될 듯.
그런데 배송예정일이 3월30일이더군요. 우왕~*2
예전에 전차종류도 많이 만들어서 관심이 가네요
총알 충전되면 꼭 구매할거라는~~
본문중에 "한국모형계의 정립되지 않은 모델링 단어"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
엄청 찔립니다 ;ㅂ;ㅂ;ㅂ;ㅂ;
제 자신도 여기저기 질문에 답하거나 모델링 강좌를 쓰면서,
저 혼자만의 생각으로 정립된 단어를 끄적여 놓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최용맘대로 정한 단어라고 밝혀는 둡니다만..)
역시, 모델에이드커뮤니티의 단어집을 기준으로 하는게 나으려나요?
어디가 맞다 틀리다 선뜻 정할 순 없는 거고, 제 경우엔 맞춤법이나 외래어 표기 관련 한정으로 조금만 신경 쓴 정도입니다. 모델에이드가 2000년대 초반까지의 용어를 온라인으로 잘 정리해 놔서 저도 도움 많이 받았었죠.
(모델 에이드, 아직도 살아 있나요? 그렇다면 한 번 들러봐야겠습니다)
문제는 궁극의 귀차니스트인 본인은 모형을 만드는 것조차 귀찮아한다는..... 모에전차학교 3을 기다리겠습니다.
모에 전차는 빨리 끝내겠습니다.
맞으면 연락하삼 나 조성호다
아님 정말 죄성...
비공개글이나 프로필의 E메일로 연락 전번 주게나.